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전통문화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국학의 진흥

유형문화재 제 314호, 양양금

풍산김씨, 세전서화첩

유형문화재 제 501호, 임계계회도

유교책판



팝업존

5/5

기탁소식

2019. 9∼11월 기탁현황 □ 閔羽鏞 戶口單子 계묘년에 청송 안덕현 마릉리에 거주하는 유학 민우용(40세)이 청송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본관은 여흥이다. 기본적으로 호주의 부친 致敬, 조부 纘爀, 증조 齊夏를 기재하였고, 외조 및 모친 손씨와 처가 4대조, 아우 應鏞(23세)을 함께 보고하고 있다. 또한 하단부에는 앙역노 원득과 앙역비 일렬 등 노비 8口에 관한 소유 현황을 상세하게 밝혀두었다.   -여흥민씨 남은공파 극복재 기탁 □ 閔羽鏞 戶口單子 계묘년에 청송 안덕현 마릉리에 거주하는 유학 민우용(40세)이 청송부에 올린 호구단자이다. 본관은 여흥이다. 기본적으로 호주의 부친 致敬, 조부 纘爀, 증조 齊夏를 기재하였고, 외조 및 모친 손씨와 처가 4대조, 아우 應鏞(23세)을 함께 보고하고 있다. 또한 하단부에는 앙역노 원득과 앙역비 일렬 등 노비 8口에 관한 소유 현황을 상세하게 밝혀두었다.   -여흥민씨 남은공파 극복재 기탁 □ 「巖齋落成宴扶儀錄」 경자년(1900) 3월 3일에 암재의 낙성식을 축하하며 각처에서 보내온 부의록으로, 일종의 물목이다. 유과 두 바구니, 떡 한 시루, 돈과 소주 등 다양한 물품이 기록되어 있어 구한말의 하례 형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포항 덕암에 위치한 암재는 이운기(李運基, 1847-1912)가 독서하던 곳이다.                                                                                                                                                    -창녕이씨 암재공파 기탁   □ 修巖 柳袗 試卷 1610년(광해군 2) 3월, 류진(1582~1635)이 增廣 進士初試에 제출했던 시험 답안지이다. 29세의 나이로 1등 제1인으로 입격했다. 시제는 ‘신하로서 표문을 작성하고 옥대를 바친다.[遺表進玉帶賦]’이다. 류진의 본관은 풍산, 자는 季華, 호는 수암이다. 유성룡의 아들이다. 광해군 때 김직재의 무옥으로 옥고를 치르고 물러났으나 인조반정 이후 봉화 현감, 청도 군수, 형조 정랑,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수암집』이 전한다. -풍산류씨 우천문중 기탁 □ 南遊日錄 李明杰이 무오년(1918) 3월 15일에 출발해서 4월 25일까지 경상남도를 둘러본 여정을 기록한 유람기이다. 형태는 두루마리 낱장문서이고, 현장에서 기록한 것을 돌아온 뒤에 정서한 것으로 짐작된다. 族兄인 新溪 李洙學과 함께 출발하였다. 안동부-대구부-밀영 영남루-동래온천-정수암-범어사 누대-해운대를 거쳐, 4월 9일 촉석루, 岐山亭, 吾山書堂, 澗翠堂 등을 둘러보았다. 4월 18일 옥녀봉에 올라서 지리산을 바라본 일정을 마지막으로 하고, 4월 25일자로 기록을 마무리하였다. 묵은 장소와 만난 인물, 명승지를 둘러본 감회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진성이씨 주촌종파 기탁   201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