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전통문화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국학의 진흥

유형문화재 제 314호, 양양금

풍산김씨, 세전서화첩

유형문화재 제 501호, 임계계회도

유교책판



 

5/5

기탁소식

2019. 3∼5월 주요 기탁현황 □ 賞花坮 그림 달성서씨 臨齋 徐贊奎(1825〜1905)의 강학소인 낙동정사가 자리했던 상화대 그림이다. 대 아래서 선유하는 풍경이다. 기해년(1899) 4월에 승평후인 박승동(1847〜)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박승동은 서찬규의 고족제자로, 저서로 『渼江集』 8책이 있다. 동서쪽에서 본 풍경을 두 장으로 나눠 그렸다. 상화대는 옛날의 城山에 해당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작은 산이 큰 강을 베고 있는데 그 위가 평평하고넓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왕이 꽃을 구경하던 곳이므로 화원현의 이름을 얻 것이 이 때문이다.” 한다. 그 아래에 예전에 錦江亭과 五柳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라고 전한다. 선유 놀이와 화원현의 옛 풍경을 감상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달성서씨 낙동정사 기탁   기탁일 문 중 명 대표자료 03.06 문화류씨 류진열家 『文化柳氏世譜』 03.07 의성김씨 문충공파 용각문중 『義城金氏族譜』初本 03.12 함안조씨 南浦亭 懸板 03.13 예안이씨 충효당 <忠孝堂上樑文> 03.15 영천이씨 자암후손 이영가 『杜詩』 03.19 진성이씨 이원영家 李源永목사 설교집 03.19 풍산류씨 우천문중 柳尋春 簡札 03.26 성산이씨 응와종택 毫宇 懸板 04.10 달성서씨 낙동정사 賞花臺 그림 04.15 인동장씨 남산파 회당종택 悔堂先生[張錫英] 影幀 04.18 기천서원 尙節祠 懸板 04.18 전주최씨 인재공파 최맹호家 退溪 李滉 簡札 04.18 전주최씨 인재공파 참봉댁 『甲午(1834)式年 司馬榜目』 05.07 인동장씨 남산파 장병대家 晩堂 懸板 05.15 안동김씨 학하[김병천]家 『五星三命指南』(袁天綱 著) 05.20 진양하씨 헌감공파[滌]종중 추원재 『晉陽世稿』木板 05.21 단양우씨 고원문중 『書傳』 05.22 순흥안씨 서파공파 안병태家 『訥隱集』(李光庭 著)   기탁자료 소개   □ 『義城金氏族譜』 草本 의성김씨 족보를 편찬하기 위해 작성한 필사 초본이다. 3책으로 된 낙질본이다. 조선 초기에 족보 편찬과정을살필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만력 계축(1553)에 黃俊良(1517〜1563)이 쓴 고려태자첨사공[용비] 묘비문과 金迬(1606〜1681)가 작성한 족보서문에 기준하여 초본을 정리한 해는 1656년 이후일 것으로 짐작된다. 본문은 천자문 순서로 인물을 정리하고 있다.                                                                                          -의성김씨 문충공파 용각문중 기탁                   □ 荒山大捷碑 拓本 황산대첩비는 이성계[조선 태조]가 전라도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일을 기념하여 조선 선조 때에 세운 승전비이다. 1577(선조 10)에 황산대첩의 승전 사실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새긴 비석이다. 운봉 현감 박광옥이 건립하면서 호조판서 김귀영(1520∼1593)이 사실을 적고, 송인(1517∼1584)이 글자를 썼다. 위 황산대첩비 탁본은 일본인들이 폭파하기 전의 비석 탁본으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4년 일본인에 의해 폭파되었고, 폭파된 비각은 파각비에 별도로 보존되어 있다.                                                                                            -풍산류씨 우천문중 기탁       □ <忠孝堂上樑文> 경인년(1770)에 가택 주인 李敏政(?)이 쓴 예안이씨 종택 상량문이다. 2019년에 상량문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나왔으며 훼손이 심하다. 姜世白(1748~1824)은 <쌍수당기> 기문에 “선성이씨는 대대로 안동 풍산현에 살면서 그 당 현판에 ‘雙修’라 하였으니, 대개 고인의 충과 효를 취하여 쌍수라고 말한 것이다.”라며 집안의 내력을 증명하고 있다. ‘충’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이홍인 (1525~1594)의 충이고, ‘효’는 이홍인의 9대손 이한오(1719~1793)의 효행을 기린 것이다.                                                                                                -예안이씨 충효당 기탁 □ 賞花坮 그림 달성서씨 臨齋 徐贊奎(1825〜1905)의 강학소인 낙동정사가 자리했던 상화대 그림이다. 대 아래서 선유하는 풍경이다. 기해년(1899) 4월에 승평후인 박승동(1847〜)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박승동은 서찬규의 고족제자로, 저서로 『渼江集』 8책이 있다. 동서쪽에서 본 풍경을 두 장으로 나눠 그렸다. 상화대는 옛날의 城山에 해당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작은 산이 큰 강을 베고 있는데 그 위가 평평하고 넓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왕이 꽃을 구경하던 곳이므로 화원현의 이름을 얻은 것이 이 때문이다.” 한다. 그 아래에 예전에 錦江亭과 五柳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라고 전한다. 선유 놀이와 화원현의 옛 풍경을 감상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달성서씨 낙동정사 기탁   201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