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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전통문화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국학의 진흥

유형문화재 제 314호, 양양금

풍산김씨, 세전서화첩

유형문화재 제 501호, 임계계회도

유교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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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탁소식

2019. 12∼2020. 02월 기탁현황   1587년 배삼익(裵三益) 밀부유서(密符諭書) 1587년에 선조(宣祖)가 황해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배삼익(1534〜1588)에게 내린 유서이다. 황해도관찰사에 제수된 배삼익은 유서를 통해 비상시의 병력 동원에 대응할 수 있는 국왕의 명령을 받았는데, 밀부 번호는 제13부이다. 밀부 번호는 제1부에서 제45부까지 있었으며 지역마다 서로 다른 밀부 번호를 내려주었다. 배삼익의 자는 여우(汝友), 호는 임여재(臨淵齋), 본관은 흥해이다. 퇴계의 문인으로, 진사사(陳謝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왔다. -흥해배씨 임연재종택       □ 「동로서당계안(東魯書堂契案)」 동로서당은 경상남도 합천 노파(魯坡에) 위치한다. 삼신(三愼) 김문호(金文鎬)가 강학을 위해 지었는데, 1946년에 그의 아들 수당(修堂)이 김영선(金永善, 1894〜1970)이 부친의 뜻을 이어서 경영하였다. <동로서당 계안>은 구한말의 합천 인물인 매서(梅西) 김극영(金克永)과 매려(梅旅) 이영진(李英振), 삼신 김문호를 기리고자 결성한 수계 명첩이다. 매서는 중재(重齋) 김황(金榥, 1896〜1978)의 부친으로, 도산서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계원은 합천, 고령, 산청, 거창, 대구, 성주 등 광범위한 지역적 분포를 보일 뿐만 아니라 총 308명에 달한다. 이는 당시에 이들이 끼친 학문적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근거로 주목된다. -의성김씨 괴정공후 수당공 동로서당 기탁 □ 1883년 이만규(李晩煃) 문과갑과 제2인 홍패(紅牌) 1883년에 생원 이만규(1845~1920)가 문과 갑과 제2인으로 급제했음을 증명해주는 홍패이다. 이만규의 자는 순칙(順則), 호는 류천(柳川)이며, 본관은 진성이다. 예안 하계 출신이다. 생부(生父)는 휘준(彙濬)인데, 숙부 휘택(彙澤)에게 출계하였다. 향산 이만도(李晩燾, 1842~1910)의 아우이다. 경술국치를 당하여 순국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석한 후 파리장서서명(巴里長書署名)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1995년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진성이씨 하계 교리댁(류천공) 기탁 □ 1833년(癸巳) 이휘진(李輝進) 소지(所志) 1833년 7월에 봉화에 거주하는 유학 이휘진이 영천관[현재 榮州]에 제출한 입안 신청 소지이다. 안동에 거주하는 권영순에게 매득받은 노비의 소유권을 공증해 달라는 요청에, 같은 달 25일에 ‘원하는 대로 사급해 줄 것[依願斜給向事]’이라는 관의 처결이 내려졌다. 위의 소지에는 영천군에서 작성해 준 노비 허여입안 문기와 노비매매문기, 당시에 증인으로 참여하였던 이들의 내용 진술 등 5매의 문건이 점련되어 있다. -화산이씨 충효당 기탁 □ 1587년 배삼익(裵三益) 밀부유서(密符諭書) 1587년에 선조(宣祖)가 황해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배삼익(1534〜1588)에게 내린 유서이다. 황해도관찰사에 제수된 배삼익은 유서를 통해 비상시의 병력 동원에 대응할 수 있는 국왕의 명령을 받았는데, 밀부 번호는 제13부이다. 밀부 번호는 제1부에서 제45부까지 있었으며 지역마다 서로 다른 밀부 번호를 내려주었다. 배삼익의 자는 여우(汝友), 호는 임여재(臨淵齋), 본관은 흥해이다. 퇴계의 문인으로, 진사사(陳謝使)로 명(明) 나라에 다녀왔다. -흥해배씨 임연재종택 기탁 20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