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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전통문화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국학의 진흥

유형문화재 제 314호, 양양금

풍산김씨, 세전서화첩

유형문화재 제 501호, 임계계회도

유교책판



팝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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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탁소식

2020. 11∼2021. 1월 기탁현황   □ <송하탄금도(松下彈琴圖)> 시・서・화 삼절이라 불리는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가 그린 <송하탄금도(松下彈琴圖)>이다. 작품의 크기는 126.5×121.2㎝로 대형이다. 달빛이 든 노송 아래에서 노인은 거문고를 타고, 아이는 찻물을 끓이고 있다. 좌측 상단에 적힌 ‘한가한 날에 동쪽 언덕에 올라, 고요히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네.[暇日登東皐 靜聽於風寒]’라는 화제(畫題)로 미루어 보건대, 거문고와 찻물끓는 소리를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거문고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릴 듯하다. 신위는 차에 관련된 시를 100편 이상 남긴 茶人이기도 했으니, 이 그림은 작자의 풍류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 그 미적 가치를 눈여겨 볼 만하다. (청송심씨 봉고정사 기탁)       □ 1499년 김계행 성균관대사성 교지(金係行 成均館大司成 敎旨)   1499년(연산군 5) 8월 13일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1431~1517)을 통정대부[정3품 상계] 성균관 대사성[정3품직]으로 임명하는 문서이다. 본 문서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5년(1499년) 1월조에, 김계행은 이 해에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는 치사장(致仕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1500년 70세에 관직생활을 접고 풍산 사제로 내려왔으며, 묵계로 옮겨 간 뒤에 만휴정을 지어 만년을 보냈다. (안동김씨 보백당종택 기탁)     □ 서화첩 <유질첩(愈疾帖)>   <유질첩(愈疾帖)>은 재와(䏁窩) 최승우(崔昇羽, 1770~1841)가 소장하여 감상한 화첩가운데 하나이다. ‘그림을 감상하며 병을 낫게 한다’는 의미의 <유질첩>에는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기려행려도(騎驢行旅圖)> 이본이 비단에 그려졌다. 화첩 상단에는 그림과 어울리는 당송(唐宋)의 시를 배치하여 감상의 격을 높였다. 또한, 정선에게 그림을 배운 천재화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수준높은 작품들이 채워져 있어 주목되고, 조선 화단을 주도해 나간 문인화가들의 미공개 작품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다른 화첩에는 소장자의 감식안이 돋보이는 품평이 있어서, 조선후기의 고동서화를 향유하고 감상하는 문화를 아울러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주최씨 인재공파 재와종택 기탁)     □ 공산정사(公山精舍) 현판   공산정사는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건물이다. 영양남씨 노애(魯厓) 남태백(南太白, 1559∼1601), 운간(雲澗) 남태화(南太華, 1565∼1591), 청천(晴川) 남태별(南太別, 1568∼1635) 3형제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1826년에 건립된 공산정사는 강당[公山精舍]과 사당[永慕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3형제는 수의공(修義公) 남의량(南義良, 1389∼?)의 후손으로, 맏이 남태백은 1601년 생원시에 입격하고 학행으로 칭송을 받았고, 둘째 남태화는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으로 학행이 있었으며, 셋째 남태별은 김언기의 문인으로 경서에 뛰어났고, 임진왜란에 곽재우(郭再祐)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귀와(龜窩) 김굉(金㙆, 1739∼1816)이 「공산정사상향문(公山精舍常享文)」을 짓고 ‘공산정사’ 현판 글씨를 썼으며,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 1825∼1912)가 「공산정사중건상량문(公山精舍重建上梁文)」을 지었다. (영양남씨 공산문중 기탁)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