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청원, 만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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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만인의 청원, 만인소는 조선시대(1392~1910) 만여 명에 달하는 재야 지식인들이 연명해서 왕에게 올린 청원서입니다. 만인소는 ‘자발적 참여를 통한 공론 정치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은 재야 지식인에게도 청원을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는데, 이들의 청원은 백성들의 ‘여론’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조선의 이 같은 정치문화는 1565년 이후 백 명에서 1666년 천 명 이상이 연명하는 청원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인소는 이와 같은 청원운동이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인 ‘만 명’으로까지 확장된 것으로, 기존 집단 청원 운동이 가장 역동적으로 드러난 형태입니다. 만인소의 내용은 여론의 이름으로 유교 이념에 근거한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인소가 이러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재야 지식인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만인소는 공론을 통해 청원 내용을 결정하고, 여기에 만여 명에 달하는 지식인들이 자필 서명과 수결手決(sign)을 함으로써 완성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기 책임성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처럼 만인소는 재야 지식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공론 정치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큰 의미로 인정받아 2018년 5월 30일에서 한국에서 2번째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855년 만인소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
사도세자를 왕의 지위로 복권시키고, 사도세자를 죽인 집권층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청원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0,094명이 연명하여, 폭 1.11m, 길이 96.5m, 무게 16.6kg에 달합니다.
자필 서명과 수결手決(sign)부분
1884년 만인소 <복제 개혁 반대 만인소>
조선의 전통 복식을 서양문물의 영향을 받은 복식으로 개혁하려는 중앙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청원서입니다. 8,849명이 연명하여, 폭1.02m, 길이 100.36m, 무게 8.3kg에 달합니다.
자필 서명과 수결手決(sign)부분
